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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회] 수지킴 간첩 조작사건의 진실 그녀는 김옥분이었다.

하늘색약속 2020. 10. 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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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회를 리뷰하겠습니다.

 

납북 직전 탈출한 남편과 살해된 아내. 두려움에 떨며 카메라 앞에 선 남자의 이야기. 1987년 1월 공개된 '그날'의 비밀을 밝힌 '안기부 해외 전문'의 참혹한 실상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선 이 남자의 첫 한마디...."살았다는 생각밖에는 없어요."

싱가포르에서 납치를 당했다는 남자.

그리고 기적적으로 탈출했다는 남자.

 

 

 

28살 윤씨는 납치 당시에 충격이 심각했던지 가슴을 움켜쥐는 모습을 보입니다. 북한 공작원들이 윤씨를 북한으로 데려 가려고 납치를 시도했고 윤씨를 납치범의 소굴로 데려가기 위해 유인한 사람이.. 윤씨의 아내였다.는 기자회견을 하기 시작합니다.

 

 

 

 

윤씨의 충격적인 기자회견 17일 후 1987년 1월 26일 저녁 6시 홍콩에 신고전화가 걸려옵니다. 신고전화 내용은 "옆 집에서 냄새가 나요. 시체 썩는 냄새인 것 같아요." 경찰이 출동했는데 내부가 깨끗하고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안방 침대 매트리스를 열어봤더니 원피스 차림에 반듯이 누운 사체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건 그녀의 정체인데 납치 사건의 피해자 윤씨의 아내였습니다.

 

윤씨가 말하는 그날의 이야기입니다. 1986년 9월에 윤씨가 사업차 홍콩에 왔고 머물 곳을 찾기 위해 집을 찾았습니다. 입주할 곳에 갔는데 그곳에는 홍콩에 거주 중인 10년 차 한국 여성 수지킴이 있었습니다.

 

수지킴은 사정이 생겨서 일본 가는 일정이 늦어졌고 고민 끝에 당분간만 같이 지내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같이 지내는 동안에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고 만난 지 할 달만에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1987년 1월 2일 신혼집에 두 남자가 들이닥칩니다. 아내가 두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윤씨에게 자리를 비워달라고 부탁했고 슈퍼에 들렀다가 집에 와보니 세 사람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이닥쳤던 사람들이 아내를 싱가포르에 납치했다고 말했고 남편은 아내가 잡혀있다는 싱가포르로 날아갑니다. 공항에서 아내가 있는 곳 주소를 전달받았는데 그곳은 북한대사관이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남한 정부의 탄압 때문에 북한으로 망명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라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사업자금으로 준 4천만원이 북한 공작금이었고 윤씨는 그 돈을 이미 사용했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17일 후에 평양에 있다던 그녀가 왜 홍콩의 아파트에서 발견되었을까요? 납북 직전에 극적으로 탈출한 반공투사 윤씨는 14년이 흐른 2001년 지문인식 기술 벤처사업가가 됩니다. 

 

승승장구하던 윤씨가 2001년 10월에 아내 수지킴에 대한 살해 혐의로 검찰에 구속됩니다. 검찰 수사의 시작은 '그것이 알고 싶다' 때문이었습니다. 87년 윤씨의 행정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던 것을 방영합니다. 그 당시 조사를 했던 홍콩 경찰을 만났는데 아직 그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14년 전 그날 수지킴의 아파트에서 일어난 진실이 밝혀집니다. 신혼집에 찾아온 건장한 남자는 없었고 윤씨와 수지킴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두 사람은 심하게 다퉜고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한 윤씨가 둔기로 수지킴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충격에 정신을 잃은 수지킴에게 배게 커버를 머리에 씌우고 침대에 숨긴 것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 어떻게 사건을 무마할 것인지 고민하던 끝에 그때 떠오른 한 가지 아이디어가 월북하자 였습니다.

 

 

 

시신을 숨기고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예매했고 가사도우미를 찾아가서 집 열쇠를 받습니다. 북한대사관에 직접 찾아가서 월북하겠다고 말했지만 거절당합니다. 북한대사관에서 거절당한 후 불현듯 새로운 계획을 세웠고 한국대사관으로 찾아갑니다. 자신이 죽인 아내를 간첩으로 몰기 시작한 겁니다.

 

그게 바로 1987년 납북 미수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 윤씨가 싱가포르에 갔을때 안기부 직원이 윤씨를 조사했습니다. 윤씨가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고 안기부도 거짓말임을 알았고 서울로 보고를 합니다.

 

 

 

 

싱가포르와 홍콩에서의 기자회견은 대사관 반대로 인해 무산됐지만 안기부 부장은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합니다. 안기부는 윤씨의 납북 진술이 거짓말인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습니다.

 

윤씨가 기자회견이 끝나고 도착한 곳은 남산 안기부 조사실이었습니다. 윤씨는 혹독한 조사를 받고 이틀만에 모든 걸 자백했습니다. 안기부는 부장님에게 국가보안법 위반과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보고를 했는데 이미 북한의 만행으로 보도됐으니 사건을 묻으라고 명령합니다.

 

 

 

부장님의 정체는 장세동이었고 평생 의리를 지킨 사람이 전두환이었습니다. 87년 1월에는 군사정권에 맞서는 민주화의 열기로 전두환의 심기가 아주 불편한 해였습니다. 그때 마침 이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는 사건이 만들어진 겁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안기부에서 만든 암호명이 '마카로니' 대책입니다. 대외적으로 수지킴 가족을 간첩 사건인양 수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철저히 진상을 숨기려고 합니다.

 

간첩 조작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아픔을 겪은 분들이 수지킴(김옥분 씨)의 가족이었습니다. 노모는 구타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둘째 여동생은 남편과 3살 배기 아들도 함께 끌려갔습니다. 김옥분 씨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실어증이 왔고 시름시름 앓다가 10년 후 돌아가셨습니다.

 

김옥분 씨를 죽인 살해범 윤씨는 14년 만에 구속됩니다. 두 달만 지났어도 윤씨를 처벌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법원은 윤씨에게 15년 6개월의 형을 선고합니다. 그런데 범죄를 주도한 장세동 안기부장과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았을까요? 아쉽게도 공소시효가 지나서 법적으로 처벌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옥분씨는 충주의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엄마와 가족들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살해당하기 전까지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왔습니다. 60~70년대에 서울로 일하러 올라온 10대 소녀가장들이 가장 많이 하던 일자리가 버스 안내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에 불까지 나버렸습니다. 8명의 가족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된 상황에서 더 이상 버스안내양으로는 가족이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김옥분씨는 결국 술집에 일을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돈을 더 많은 벌게 해 준다는 말을 듣고 홍콩으로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마카로니 대책에 보면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면 15년 만에 가족들이 언니가 묻혀있는 곳에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라와 정치를 위해 개인이 희생양이 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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