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역사저널 그날5화 : 조선 7대임금 세조,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과 안타까운 죽음의 단종

하늘색약속 2021. 1. 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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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저널 그날5화 : 왕위찬탈자 수양대군, 계유정난 그날의 이야기

 

 

조선의 7대 임금이자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세조! 나라를 이끈 '치적군주'인가? 왕위찬탈자 '피의 군주'인가? 계유정난, '그날'을 추적한다!

 


1455년 6월 11일 

조선에 7대 임금으로 즉위한 세조, 그의 또다른 이름은 수양대군이다. 그는 어린 조카의 왕권을 빼앗기 위해 조선 초기, 최대의 피바람을 일으킨 인물이다.

 

2년전, 1453년 10월 10일 

밤이 깊어지자 수양대군은 당시 좌의정이었던 김종서의 집을 찾는다. 집 밖으로 마중나온 김종서는 한 장의 편지를 건네받고 달빛에 비춰보는데..그 순간 김종서가 쓰러지고 계유정난이 시작되었다.

 

계유정난은 어떤 사건?

계유정난은 삼촌 수양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서 고명대신 김종서 등을 비롯한 의정부 대신들을 죽이고 하룻밤 만에 정권을 장악하게 된 사건이다.

 

 

계유정난이 조선역사에 미친 영향은?

 

계유정난은 조선 초기에 발생한 사건중에서 후대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초기 정치지배세력간의 갈등이 극명하게 나타난 사건으로 조선 중후기로 넘어가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일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적장손 왕위 계승 이라는 원칙이 무너지고 42명이나 되는 공신들의 세력이 생겨났기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왕권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세종-문종-단종으로 이어지면서 자리잡아가던 유교적 질서를 왕실의 종친이 앞장서서 무너뜨린 희대의 사건이었기에 당대 유학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 것은 물론 후대에도 논란거리가 될 정도였다.

 

계유정난의 나비효과로 정도전이 고려를 무너뜨려가면서 백성들에게 돌려주려 했던 권문세족들의 특혜가 다시 조선 공신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이 무너지면서 이후로 즉위하는 왕들은 자신의 정통성과 자리보존을 위해 공신남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신남발은 기묘사화, 이괄의 난, 정묘호란의 계기를 제공하여 조선 정국을 뒤흔들게 된다.

 


 

 

김종서는 어떤 사람인가?

김종서 [1383-1453] 조선의 명장, 문신

세종의 명을 받아 두만강 육지를 개척하고 오랜 시간 북방을 지킨 인물로 백두산 호랑이 대호라고 불리웠다. 고명대신인 김종서가 어린 단종을 보필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김종서를 장군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그는 16세 때 문과에 급제한 문관 관료출신이라고 한다.

 

김종서는 문종이 세상을 떠난 뒤, 12살의 어린 세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 문종의 유언을 받들어 황보인과 함께 어린 임금을 대신해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했다. 

 

고명대신이란?

선왕의 유언을 받드는 신하를 말한다. 왕의 유지를 받는 신하로 임금의 총애를 받은 핵심 인물을 뜻함.

 

분경금지법 이란?

벼슬을 얻기 위해 집정자의 집에 분주하게 드나들며 인사청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수양대군과 문종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나?

문종은 아버지인 세종을 닮아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과학에도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측우기뿐 아니라 화차를 직접 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왕위에 오른지 2년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세종이 있을때는 수양대군도 아버지를 도와 조선 초기 문화 및 제도정비 사업에 참여했다. 딱히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볼 수 는 없다고 한다.

 

문종 승하 후 수양대군은 어떤 시선을 갖게 됐을까?

수양대군은 부왕 세종의 명을 받아 동생 안평대균과 함께 집현전을 감독하고 한글작업에도 참여했다. 최초의 한글 불서인 석보상절도 찬술하였다. 또한 무예를 즐기고 사냥을 좋아해서 사람들은 선대 태종의 기개를 닮았다는 말을 했다. 문종이 세상을 떠난 후 조카 단종이 왕이 되자 직접 명나라 고명사은사를 자청해 먼길을 떠났고, 어린왕의 혼사를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단종을 대신해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이며 단종의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은 단종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조선이 완전히 신하들의 나라가 될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왕족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한명회와 권람 등을 옆에 두어 세력을 키워나갔다. 

 

안평 대군은 수양 대군의 바로 아래 동생으로 신하들의 존경과 믿음을 받는 인물로서 세력을 키워나가는 수양대군에게는 김종서와 더불어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었다.

 

고명사은사란?

조선 왕의 즉위를 승인해준 명나라의 처사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이다. 

 


 

 

영화 관상 스틸컷

 

 

영화 '관상' 중에서

호랑이의 관상을 가진 김종서와 역모를 일으킬 이리의 상을 가졌다는 수양대군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수양대군은 실제 어떤 모습이었을까?

 

현존하는 어진중에서는 세조를 찾을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구한말에 고종은 당시 훼손이 심각했던 세조의 어진을 모사하도록 명했다. 이때 그려진 어진은 한국전쟁시기 부산으로 옮겨져 보관되는데 보관처에 불이 나면서 결국 소실되고 말았다.

 

 

 

해인사 존상도

 

경남 해인사에는 세조로 여겨지는 존상도가 1점 보관되어 있다. 이것이 진짜 세조의 모습일까?

진짜 세조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세조가 독실한 불교신자였기에 스님들이 탱화처럼 그린것으로 추정된다.

 

실록에 기록된 수양의 모습은?

일부러 노쇄한 말을 타고는 그 말이 수십 번을 넘어졌으나 문득 말에서 빠져나와 우뚝 서곤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세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기록들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허세가 있는 사람이었다???

 

 

김종서를 제거한 후 계유정난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김종서를 친 그날밤, 수양대군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미리 포섭해둔 무리들이 도성사대문과 궐안을 장악하고 수양은 단종의 명을 빙자해 대신들을 입궐시켰다. 그리고 상생부에 따라 자신을 지지 하지 않는 이들을 차례로 처단해 나가니 이날 죽은이가 수십명에 달했다. 단 하룻밤 만에 수양대군의 천하가 된 것이다.

 

계유정난 1단계 :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종서가 퇴궐한 시간을 이용

계유정난 2단계 :  김종서 척격 후 사대문을 봉쇄

계유정난 3단계 :  단종에게는 안평대군, 김종서 등이 역모를 일으키려 해서 먼저 처단했다고 보고

계유정난 4단계 : 미리 포섭한 병사들을 세 겹으로 세워 살생부에 따라 대신들을 척살

 

 

계유정난 이후의 상황

계유정난 이후 공신책봉 43명이 됐는데 무신 19명, 환관 2명, 천민 출신 1명까지 이례적으로 포함되었다. 나중에 계유정난의 공을 포상 할때  시녀도 참가하여 포상을 받았는데 숙청된 대신들의 집을 받았다고 한다. 

 

반대로 역모 가담자로 몰린 당사자의 가족들은 정변의 역모 혐의를 씌워서 상당수가 처형을 당하고 일부는 새로운 공신이 된 사람의 노비로 들어가게 된다.

역모죄가 적용된 친동생 안평대군은 바로 죽이지 않고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는데 후환을 없애기 위해 사약을 내렸다. 친동생들은 물론 아버지와 형이 부탁한 조카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이 수양대군이다.

 

계유정난 이후 수양은 바로 왕이 되지 않았다?

계유정난 다음날 단종으로부터 관직을 하사받게된다.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 영경연서운과사 겸 판이병조사를 하사받게 된다. 관직이름이 너무 어려운데,, 결국 의정부의 영의정 임무, 경영관의 총책임자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하게된다. 보름 뒤 병마도통사까지 겸직하게되면 권력을 장악해간다.

 

왕이 되기 위한 명분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군신유의를 지키는 척 하면서  단종이 스스로 왕권을 내줄 때까지 수순을 밟아 간것이다. 당시에 13살 이었던 단종은 삼촌이었지만 너무 무서웠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즉위를 하게된 단종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

 

 

드라마 '공주의남자' 중에서

드라마 속 주인공은 원수지간인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 간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다. 경북에 한 마을에는 이와 유사한 전설이 내려온다. 백악산 근처에 굴이 있는데 수양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서로 사랑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조선시대 야담집 금계필담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금계필담, 서유영이 지은 야담집, KBS역사스페셜 83화

 

 

금계필담

금계필담은 1873년 조선 후기의 문신 서유영이 자신이 들은 141편의 이야기를 수록한 설화집이다. 관직에서 쫒겨난 서유영이 말년에 무료함을 달래고자 심심푸이 겸 인생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계필담에서 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김종서와 사육신의 죽음에 공주가 울며 비난하니 세조가 노여워하고 공주는 이를 피해 도망을 친다. 그후 산속에서 김종서의 손자를 만나고 둘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시간이 흘러 세조가 산 근처 길을 가던 중 자신을 닮은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공주가 김종서의 손자와 혼인한 사실을 알고 눈물을 보인다. 

 

금계필담은 실제가 아니고 백성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세조의 눈물이 의미하는 것은 세조의 인간적인 면을 이해해보기 위해서 백성들이 지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백성들이 세조를 용서하는 표현의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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